사진 by 허 란

한평생 공공의료 확대와 건강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신 우석균 선생님께서 2026년 6월7일 잠드셨습니다. 의사로서 지녔던 소신과 철학은 여러 인터뷰와 기사에 남아 있지만, 특히 성수의원 폐업 직전까지 24년간 지역 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등 다른 병원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 의료취약계층의 주치의로 살아온 삶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되는 세상”을 강조하시며 누구보다 아픈 사람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12·3 내란의 밤에는 국회로 달려가셨습니다. 병세가 깊어져 몸이 크게 쇠약해진 상황이었지만 불의가 일상이 되는 세상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진실의 힘은 선생님께서 [12·3내란 시민기록 프로젝트]를 통해 남겨주신 말씀과 모습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2025년 6월 27일 인터뷰 당시 당시 선생님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었지만, 국회로 향했던 이유와 자신의 신념을 명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극우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그 원인과 위험성,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2·3 계엄이 한국 극우 세력의 성장을 보여준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일시적인 일탈이나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12·3은 한국 극우의 본격적인 등장과 가능성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에 따라 한국 사회운동의 미래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결정될 것입니다.

극우를 미미한 존재로 여기거나, 잠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별다른 대책은 세우지 않은 채 '세계적인 현상일 뿐'이라거나 '한국은 다를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12·3 계엄은 향후 10년, 20년 동안 한국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상당히 우경화되었고 민주주의 역시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12월 3일 하루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독일에서도 경제공황 이후 극우 세력이 성장했고 결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초기에는 모두가 그것을 일시적인 소동 정도로 여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대응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12월 3일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한 번 위기를 막아냈다고 해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반극우 전선의 선두에 서야 하며, 그 전선을 사회 전체로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날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석균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환자를 돌보는 의사였고,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시민이었으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실천가였습니다. 선생님이 남긴 경고와 당부는 나날이 혼란스럽고 때로는 절망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은 지난하게 노력하여 만들어 가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 희망의 꽃으로 선생님의 고귀했던 삶을 추모합니다.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