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윤 (서울대 국문학과 3학년)

사실 그 너머의 진실

소설을 규정하는 완전무결한 정의는 있을 순 없겠지만, 소설의 특징을 꼽아본다면 흔히들 허구성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란 꾸며내거나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의 허구성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 목적이 있습니다. 소설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허구의 세계를 끌어들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요. 하지만 온갖 갈등과 모순이 얽히고 설킨 것이 세상사임을 생각해보면 소설만큼 그 존재부터 이 세상을 충실히 반영하는 장르도 없을 것입니다. 허구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그 반대로 진실을 곱씹어 보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진실과 사실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지, 머릿속이 혼란으로 엉킵니다. 여기서 감히 진실과 사실에 대해 논하자면, 진실에 다가서는 것은 사실과 사실의 일개의 면면을 넘어서 그것들이 관계하여 짜여지는 구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일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인간은 다면적입니다. 나에게는 진저리칠 정도로 끔찍한 놈이 다른 이에게는 끔찍이 아끼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끔찍한 놈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끔찍이 아낌받는 사람이라는 것도 각각이 모두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의 진면모는 무엇인가요.

진실은 사실을 넘어설 때 비로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진실을 구하는 작업을 행할 수 있는 것이죠. 가령, 현실에는 부랑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랑인이라는 명목하에 형제복지원에 감금당한 이들은 모두 부랑인이었던 가요? 애초에 부랑인은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되어 자유를 박탈당할 수도 있음에 마땅한 존재인가요? 그 당시 국가는 국민을 어떠한 존재로 여겼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으며, 여러분은 국가 폭력으로 인한 비극이 현시대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진실의 힘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부끄럽게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형제 복지원과 관련해서 맡은 제 주된 업무는 언론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미지를 정리하고 출처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지를 정리하면서 언론에서 사용하는 주된 이미지들이 박인근 원장이 출판한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에 의존하고 있고, 형제복지원의 모습을 담은 영상 자료는 대부분 그 출처가 형제 복지원 홍보 영화인 ‘종점 손님들’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료라도 남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의 강제 수용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 형제복지원에서 자체적으로 발간한 것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래서 그 자체의 한계를 가진다는 점이 자료를 정리하면서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국가는 형제복지원의 존재를 묵인함으로써 개인의 일상을 해쳤고, 그로 인해 개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리는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에 관한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사과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자료를 정리하면서, 여전히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 규명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여전히 힘쓰는 여러 노력들을 접하며 희망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 사실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삶을 꾸려 나가고, 국가 폭력의 재발 방지라는 더 큰 차원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시는 피해자분들과, 또 그분들을 지지하고 법률 구조 지원을 통해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라는 믿음을 실천하는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활동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온과 불온

제가 자원활동에서 맡아 진행중에 있는 일로는 박동운 선생님의 재판 기록 스캔과 형제복지원 피해자 분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경우를 보며 국가 폭력의 피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이후 삶에 대한 비슷한 결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국가 폭력의 피해 이후에도 존재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인 낙인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과 가정이 피해의 직격타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제3자인 제 안에서도 멋대로 통탄스러움이 올라올 정도인데, 당사자들의 그 심정은 어땠을까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박동운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억울한 옥고를 치루신 뒤 고향에 갔을 때 행하지도 않은 간첩 행위의 누명이 여전히 존재함을 말씀하셨고, 형제복지원 사건의 어느 피해자 분 또한 인터뷰에서 부랑인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사회가 형제복지원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있기 전까지 이 사실을 숨겼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분은 최근에는 그래도 점점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이제는 피해 사실을 당당히 밝힐 수 있다는 말씀에서 피해자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대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의 힘 활동은 제 안온했던 일상을 되돌아보고 여러 국가 폭력 피해의 케이스를 통해 폭력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저의 무딘 감각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일상이 안온할지라도 여전히 국가 폭력이 어느 한편에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보탤 수 있는 힘 중 하나는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피해에 대해 편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러한 피해자 분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러한 국가 폭력의 피해 사례를 접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이런 일들이 감히 제 스스로 제게서 다양한 경험이 되었다거나,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보람 됐다고 말하기보다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무심했던 지난 날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의 안온한 일상을 위해서라면 불온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불온이 되고자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