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가현(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윤석열 탄핵 이후 벌써 두 차례의 선거가 치러졌다. 내란 우두머리를 배출한 국민의 힘은 장미대선에서 선택받지 못했고, 더불어민주당은 3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합산 득표율이 이재명 후보를 근소하게 앞지른 결과는 예사롭지 않은 징후로 다가왔는데, 6월 3일 진행된 제9회 지방선거에서 그 불길함은 기우가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 났다. 계엄 이후 극우 개신교 집회의 연사로 활약한 이들은 보수 정당의 스피커로 탈바꿈했으며,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최초의 5선 서울시장이 탄생했다.

1987년과 2016~2017년에 이어 시민의 힘으로 독재를 막아낸 것이 벌써 세 번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자꾸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광장이 뜨거워질 때마다 ‘국민’이라는 뭉툭한 이름으로 묶이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고, 혹자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반(反)민주주의적이라 대화의 가능성을 구할 길이 가로막힌 듯하다. 이 현상은 전 세계적인 우경화의 흐름 중 일부에 불과할까? 한국 사회가 특수한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위기일까?

〈극우의 힘, 민주주의의 미래〉 연속 강좌의 두 번째 시간은 ‘한국의 반동정치: 우파의 형성과 민주주의의 역설’을 주제로 꾸려졌다. 연사인 양명지 교수(하와이대학교)는 최근 펴낸 저서 『Reactionary Politics in South Korea: Historical Legacies, Far-Right Intellectuals, and Political Mobilization(남한의 반동 정치: 역사적 유산과 극우 지식인, 그리고 정치적 동원)』(2025)을 바탕으로 유럽·북미 중심의 극우 연구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국 극우의 역사적 맥락을 조명했다. 비교역사적 관점에 입각한 풍부한 이론적 검토와 연구자의 치열한 필드워크 경험을 통해, 한국의 극우 정치 집단을 구성하는 개별 행위자는 물론 그들의 재생산 및 세력화의 기제를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은 나라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것

양명지 교수가 한국 극우의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어휘는 ‘old wine in a new bottle’이다. 현대 극우 정치는 곧 냉전 시기의 유산인 반공주의, 좌파에 대한 공포, 그리고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한 향수라는 ‘오래된 와인’을 소셜 미디어 기술과 혐오의 정치라는 ‘새로운 병’에 담은 꼴이라는 분석이다.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우익을 등치시키는 극우 내러티브는 몇십 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와 ‘우익’의 기의는 북한과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로 얼룩졌다.

이처럼 한국의 극우를 사유할 때 남한 단독정부가 반공주의를 기틀로 삼음으로써 근대적인 국민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토양에서 형성된 ‘보수 헤게모니’와 양당제가 결합한 결과, 한국 정치에서 실질적인 의미의 ‘좌파’는 거의 없거나 그 존재감이 매우 미미해졌다. 정부의 시장 간섭 정도나 소득 재분배 정책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가려지는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양당의 경제 정책은 큰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북한에 대한 입장에 의존하여 좌우의 라벨링이 부여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우파, 보수, 극우를 경험적 수준에서 구별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극우 인프라의 구축과 헤게모니 전략

실제로 계엄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준 행보는 보수의 스펙트럼을 한참 초과한 것이었다. 다수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내란 지지 집회에 참여해 발언했고, 정당 지도부는 윤석열과 제때 단절하지 못하고 탄핵 판결을 지연시켰다. 재작년 겨울에 목격했듯 한국의 극우 정치는 정당과 사회운동이 연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기도회 및 집회를 주도하는 극우 개신교 집단, 레거시 미디어에 더해 핵심적인 정보 유통 창구로 부상한 뉴미디어 채널이 극우의 인프라를 구축한다. ‘잃어버린 10년’을 개탄하며 등장했던 뉴라이트(New Right)는 직접 풀뿌리 단체를 조직하고 역사 수정주의를 통해 극우 정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인프라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이처럼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진지전(war of position)을 구축하는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 출신의 좌파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에서 빌려온 것이다.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윤어게인’ 집회의 동원력은 극우적 인식론의 확산 및 정상화를 목표로 한 극우 정치 전략의 결실인 셈이다.

-새로운 전략: 도둑맞은 차별과 여성혐오

반북·반공·빨갱이의 수사는 한국전쟁과 강력한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겪은 노년 세대에게 여전히 유력하다. 그러나 지지 기반을 세대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활용된 것이 바로 공정 담론과 안티 페미니즘이다. 대통령 후보의 SNS 계정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짜리 공약이 게시될 수 있다는 사실은, ‘혐오’가 지지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유용한 전략이며,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심각하게 결렬되어 있음을 방증했다. 더불어 청년 세대의 우경화는 비교적 남성에게서 극명하게 나타나지만,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나’라는 ‘무고한 개인’이 치러야 한다는 데 분노하는 이들은 젠더를 막론하고 증가하는 추세다.

억압받는 자들의 언어를 전유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구하는 전략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민주주의의 자장 안에서 납득 가능한 것으로 위치시킨다. 이렇듯 극우 정치는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며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생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대신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민주적 공동체 내부에서 극소수가 이미 가진 권력을 보존하고 증식하는 쪽으로, ‘살 만한 삶’의 범위와 규모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치달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새롭게 목도하는 정치적 현상은 더 이상 좌우 스펙트럼만으로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진단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벡터이자 지배적 현실이다. 계급과 젠더를 가로지르는 청년세대의 우경화, 내란 정당의 득세, ‘부정선거’와 ‘재선거’ 구호가 혼용되는 시위 현장……. 계엄을 건너 탄핵을 이뤄낸 지금-여기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이들을 우발적으로 돌출한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대신, 현실민주주의의 협소함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극우는 분명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실제다. 그들의 계보를 추적하고 이해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은 민주적 공동체를 더욱 민주화하기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