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청년진보당)

서울 선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결과는 구청장이다. 같은 서울에서 민주당은 25곳 중 17곳에서 구청장을 이겼다. 정원오가 51~54%에 머문 자치구에서 같은 당 구청장 후보는 1만~2만 표를 더 받았다. 노원·중랑·성북·강서에서는 국힘 구청장 후보가 오세훈보다 1만 4천~1만 5천 표씩 덜 받았다. 이 네 구에서만 약 3만 명이 '시장은 오세훈, 구청장은 민주당'으로 표를 갈랐다. 용산은 더 극적이다. 시장은 오세훈이 17%포인트 차로 이겼는데 구청장은 국힘이 6%포인트 차 신승이었다.

'20·30이 극우화됐다', '청년이 민주당을 떠났다'는 납작한 진단으로는 이 분리 투표를 설명할 수 없다. 청년을 포함한 서울 시민은 구청장 인물 검증에서 민주당을 신뢰했고 시장에서 거부했다. 서울시장에 기대하는 어떤 문턱에서 정원오가 떨어진 것이다. 진단이 두루뭉실하면 처방이 어긋난다.

출구조사는 세 가지 신호를 준다. 첫째,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 75.3%가 오세훈을 찍었다. 70대 보수 결집 71%를 넘는다. 한 세대·성별 집단이 반대 진영에 75%를 몰아준 건 흔치 않다. 이탈이 아니라 단층이다. 둘째, 30대 여성 53.6%가 오세훈을 찍었다. 정원오는 42.8%, 격차 10.8%포인트다. '20·30 남성은 보수, 20·30 여성은 진보'라는 젠더 이분법으로 청년을 읽던 시대가 흔들린다. 셋째, 텃밭의 분리 투표다. 40·50이 가장 두꺼운 지역에서 민주당 시장 후보가 같은 당 구청장의 표를 흡수하지 못했다. 청년 보수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수도권 청년과 지방 청년을 하나로 묶는 것도 문제다. 수도권 청년은 초경쟁 사회에서 한정된 몫을 두고 싸우고, 젠더는 그 다툼의 가장 선명한 전선이다. 지방 청년은 일자리와 미래가 빠져나가며 파이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이라 강한 지도자상을 열망한다. 대구에서 홍준표 팬덤을 추경호가 흡수하지 못하고 김부겸이 흡수한 것이 그 증거다. 표심의 모양은 비슷해도 동기가 다르니 처방도 달라야 한다. 젠더 갈등은 청년 분노의 원인이 아니라 표현형이다. 뿌리는 자원 배분의 불안, 자산 사다리의 박탈, 분배 질서에 대한 신뢰 붕괴다.

청년이 분노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FOMO다. 10년 전 2~3억 하던 노원·도봉·강북 국민주택 평형이 지금 15억이다. 코스피 8천 시대가 와도 종잣돈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청년은 자기 임금 곡선으로 자산 곡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매일 확인한다. 그리고 사다리를 걷어찬 세력이 민주당과 그 지지층 40·50이라고 체감한다. 이 체감 위에서 '민주당은 임대주택만 좋아한다, 청년을 영원한 세입자로 묶는다'는 보수의 선전이 귀에 꽂힌다. 정책이 나빠서가 아니라 발신자를 믿지 못해서 닿지 않는다.

다음은 계층 상승의 꿈이다. 지금의 청년이 원하는 건 위로금이나 임대주택이 아니다. '역사의 주인', '경제적 자유', '우리도 기득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86세대에 대한 반발과 한 짝이다. 청년 눈에 86세대는 민주화 운동과 정치 권력과 부동산 자산을 한꺼번에 가져간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동체·연대·분배·정의라는 말을 기득권의 언어로 듣는다. 공공임대 확대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무임승차'로, 초과이윤 배당은 '주식 안 하는 사람에게 내 배당을 떼어준다'로 번역된다. 객관적으로 청년은 분배의 수혜자다. 그러나 사람은 객관적 이익이 아니라 주관적 욕망을 따라 움직이고, 표심도 그 욕망을 따라간다.

마지막은 기득권의 위선이다. 청년이 조국과 유시민에게 강한 거부감을 보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가 봐도 사회 상위계층인 이들이 여전히 자신을 약자로, 투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충격이었던 건 입시비리 의혹 때문만이 아니다. '민주·진보=약자'라는 자의식의 허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른의 부재가 겹친다. 지금의 10·20 남성은 삶에서 제대로 된 어른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산업화 세대의 강한 마초는 시대착오적이어도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한다고 느끼고, 민주화 세대의 부드러운 어른은 평등을 말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청년 남성에게 후자의 부드러움은 비겁함으로 읽힌다. 그래서 시대착오적인 줄 알면서도 강한 아버지 모델을 찾는다. 민주당이 잃은 것이 바로 이 어른의 자리다.

게임판도 바뀌었다. 오늘날 정치 논쟁은 정책 경쟁이 아니라 해석 경쟁이다. 코스피 8천 시대가 와도 청년 남성 공론장의 반응은 '고환율은?', '반도체 빼면 4,100인데?'였다. 사실을 평가하기 전에 해석 방향이 정해진다. 2017년 미국과 2021년 NATO가 인지전을 여섯 번째 전장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다. 적의 영토가 아니라 국민의 판단력과 사회적 신뢰를 공격하는 시대다. '일베'는 이제 하나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완결된 세계관이다. 5·18을 폭동으로 재서사화하고, 호남·여성·진보를 노력 없이 권리를 누리는 자로 본다. 이 세계관은 밈과 짤과 고정 서사의 반복 노출로 학습되고, 알고리즘이 그 반복을 자동화한다. 무서운 건 정치보다 문화를 먼저 장악한다는 점이다. 게임, 웹툰, 힙합, 아이돌 커뮤니티, 쇼츠 안에서 '좌빨', 'PC충' 같은 낙인이 놀이가 된다. 민주·진보가 '지역 카톡방에 몇 명 모았다'로 성과를 재는 동안 반대편은 온오프라인 인지전에 화력을 집중한다.

미뤄둔 30대 여성 이야기를 해야 한다. 53.6%가 오세훈을 찍었다는 건 '이대녀=진보'라는 가정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30대 여성은 20대 여성보다 보수가 더 강하게 결집했다. 청년 여성의 보수화는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진다. 30대 여성은 결혼·출산·돌봄·주거·경력단절이 한꺼번에 부딪히는 세대다. 자가 진입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민주 진영은 공공임대를 내밀었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가 진입이었다. 돌봄 국가책임제는 옳은 방향이었지만 경력·자산 문제를 직접 풀어주지 못했다. 청년 여성을 진보의 보루로 동원하면서 정작 그들의 생애 좌표에는 답이 미흡했다. 남성 청년 보수화 대 여성 청년 진보 잔류라는 이분법은 끝낼 때다. 청년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분배 문제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진단이다. 처방의 첫 원칙은 청년 안에서 도려낼 것과 끌어안을 것을 분리하는 일이다. 반민주당 정서는 한 덩어리가 아니다. 핵심층은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일베적 세계관을 체화하고 5·18을 왜곡하고 '윤 어게인 부정선거' 같은 음모론을 생산한다. 인천 계양에서 김현태 13%, 평택에서 황교안 6%가 그 표심이다. 그러나 다수는 그 혐오를 빌려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동기는 혐오가 아니라 분배 불안과 위선에 대한 환멸이다. 골수를 놔두면 다수가 끌려가고, 다수를 극우 취급하면 반발만 커진다. 분리해서 대처해야 한다.

골수에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단 익명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공적 영향력을 가진 자의 발화에 더 높은 책임을 묻는 설계가 핵심이다. 같은 표현이라도 익명 게시판과 구독자 100만 채널에서 발화될 때 무게가 다르다. 독일의 NetzDG는 대형 SNS에 불법 게시물 삭제 의무를 지웠고 최소 25개국이 유사 모델을 채택했다. 다만 과잉 삭제와 표현 위축이라는 비판이 분명하니, 한국에 적용한다면 삭제 의무와 이의·구제 절차를 한 쌍으로 설계해야 한다. 반복 노출로 학습되는 세계관을 멈추려면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화도 필요하다.

인지전 대응은 더 신중해야 한다. '청년의 미디어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댓글공작과 블랙리스트의 그림자가 남은 한국에서 국가가 인지전에 나선다는 건 검열과 통제로 읽힌다. 그래서 컨트롤 타워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제도로 못박고 출발해야 한다. 알고리즘과 딥페이크와 해외 정보작전에 대한 기술적 대응, 시민의 판별을 돕는 공공 인프라, 과거 국가권력의 여론 개입에 대한 기록과 검증까지가 그 일이다. 반대로 특정 콘텐츠·인물·진영에 대한 직접 통제, 무엇을 믿으라는 발화, 허위 여부의 직접 판정은 하면 안 된다. 허위 판정은 사법부와 독립 팩트체크 기관, 궁극적으로 시민에게 맡겨야 한다. 컨트롤 타워의 임무는 청년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 환경 자체를 지키는 일이지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는 일이 아니다. 권한 설계, 독립 감사, 초당적 거버넌스, 일몰 조항을 한 묶음으로 박고 시작해야 한다.

도려낼 것을 정했으면 나머지는 끌어안아야 한다. 혐오 서사가 청년의 마음에 꽂히는 이유는 그것이 분배 불안을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이다. 분배 불안을 풀지 않으면 혐오의 수요가 줄지 않고, 수요가 그대로면 어떤 규제도 풍선효과로 다시 피어난다. 청년 주거·고용·분배의 안정은 그래서 혐오 대응의 예방책이다.

구체적으로 셋이다. 첫째, 살 만한 임대주택이다. 지금의 공공임대는 좁고, 소득이 조금만 올라도 나가야 한다. 그러니 임대는 거쳐 가는 곳이 되고 안정의 통로는 자가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오래 거주할 수 있고 소득이 늘어도 쫓겨나지 않으며 가족이 함께 살 면적의 공공임대를 수도권에 대량 공급하면 집값 압력도 풀린다. 둘째, 지방 청년에게는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일자리만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사람과 머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청년 창업·문화·산업 거점을 광역 단위가 아니라 청년이 실제로 먹고 자고 출퇴근하는 생활권 단위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불안정 노동을 개혁해야 한다. 2024년 8월 20대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43.1%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였고 정규직은 처음으로 20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이 불안정이 혐오 서사가 자라는 토양이다. 플랫폼 노동·프리랜서·계약직 청년의 사회보험·교섭권·최저소득 보장은 진보의 본질이다.

마지막으로 AI가 몰고 올 산업 전환이다. 생산성이 폭발하는 만큼 그 과실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다음 십 년의 분배를 결정한다. 가만히 두면 과실은 자본과 플랫폼에 쏠리고 청년은 또 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난다. 농지개혁이 경자유전으로 땅의 소출을 경작자에게 돌렸듯, AI 시대에는 노동을 중심에 둔 전환 설계가 필요하다. 전환기 소득 보장, 재교육, 노동시간 단축, 생산성 이득의 사회적 배분을 묶어 개인이 격랑을 홀로 떠안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진보가 선점해야 할 다음 의제다.

끌어안았다면 미래를 그릴 때다. 욕망에 응답하는 일은 신뢰의 시작이지 진보의 목표가 아니다. 그 입구에 머물면 진보는 영원히 2등 보수가 된다. 모두가 강남에 살고 모두가 삼성전자 대주주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 위로 가려면 누군가는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게 자산 시장의 산수다. 보수가 청년에게 약속하는 자유는 실은 자본의 위험을 청년 개인이 떠안는 자유다. 한국 개인투자자 다수가 시장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자본이득이 상위 10%에 집중된다는 통계는 이미 다 있다. 진보가 청년의 귀에 닿게 정치적으로 번역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좋은 삶을 제시해야 한다. 욕망과 싸우려면 대체할 욕망이 있어야 한다. 자가와 코스피로 도달하는 자유가 아니라 시간의 자유다. 주 4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회복되는 저녁과 주말, 공공의료와 부담 없는 돌봄, 공원과 도서관과 양질의 임대주거로 사적 자산 없이 가능해지는 좋은 일상. 북유럽과 일부 유럽에서 이미 작동하는 그림이다. 다만 정치인이 나서면 위선으로 보인다. 사상전은 다큐멘터리와 웹툰과 영화와 유튜브, 청년이 신뢰하는 '형'들의 말을 통해 세련되게 해야 한다. 보수가 청년의 욕망을 유튜브와 남초 커뮤니티와 학원 강사의 입으로 설계했다면, 진보의 사상전도 제도 바깥 문화 영역에서 시작하자. 인지전이 방어라면 사상전은 공세다. 결실은 다음다음 선거에야 보이겠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청년이 떠난 것이 아니다. 정원오가 낙선한 옆에서 민주당 구청장 17명이 압승했다. 다만 20대 남성 75.3%와 30대 여성 53.6%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은 균열이 이미 깊다는 신호다. 가만히 있으면 5년, 10년 뒤가 어둡다. 처방은 셋이다. 영향력자 혐오 발화와 알고리즘을 겨눈 비대칭 규제로 도려내고, 분배 불안을 푸는 안전망과 사다리로 끌어안고, 욕망의 풍경에 균열을 내는 사상전으로 다시 그린다. 하나도 빼면 안 된다. 도려내기만 하면 반발만 커지고, 끌어안기만 하면 보수의 자장에 머물고, 미래를 제시하다 이루지 못하면 또 한 번의 위선이 된다. 셋이 같이 가야 한다. 강한 꼰대의 세대를 넘어, 꼰대가 되지 않으려 한 세대를 지나, 우리는 좋은 꼰대가 될 의무가 있다.

사진. 허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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