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힘은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를 우윈틴과 한타와디 우윈틴재단으로 결정했습니다.

1930년 버마에서 태어난 우윈틴 선생은 2014년 4월 21일 영면하기까지 버마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험하고도 기나긴 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세야’(SAYA, 존경하는 큰 어른, 선생님)였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양곤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기자와 신문편집자로 행동하는 언론인의 표상으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1988년 88항쟁 당시 언론연맹 운동에서 부위원장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벌이며 군사독재에

저항했습니다. 1988년 9월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NLD(민족민주연맹)를 창립, 조직적인 반군사독재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고문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989년 7월, 우윈틴 선생은 NLD 구성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 과정에서 체포 구속되었고, 심각한 고문과

폭력을 당했습니다. 군용견을 사육하기 위해 설계된 수감시설에서 때로는 물과 식사도 주지 않은 야만적인

처우가 지속되었습니다. 고문의 목적은 고문피해자가 다시는 ‘인간’으로 살지 못하도록 인간과 세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윈틴 선생의 꺾이지 않은 용기에 의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고문피해자들이 고문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악명 높은 인세인 형무소의 정치범들과 함께 교도소 당국의 인권유린에

저항하고 싸웠으며 인권보고서를 제작, 그 실태를 UN에 고발했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처음 3년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지만, 형기 만료 즈음, 10년형이 추가되었습니다. NLD주도의

대중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였습니다. 보복적인 추가 형으로도 우윈틴 선생의 정치적 신념과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감옥 안에서 반군사정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치활동을 벌였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었고, 필요한 곳에 반드시 쓰일 줄 알았던 어른이었습니다. 1996년 3월 만기가 다가오자

다시 7년형이 추가되었습니다. 1995년 버마 감옥의 인권유린과 고문실태에 관한 83쪽짜리 보고서를 작성,

UN 특별보고관에게 보냈다는 이유였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은 3차례에 걸쳐 수감기간을 연장하면서 19년 동안 그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2008년 9월

풀려나기까지 우윈틴 선생은 감옥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맞서 저항하는 한편,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버마와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전달했습니다. 정치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버마

군사정권은 우윈틴 선생의 외침과 실천으로 국제사회의 압력과 비난에 부딪쳐야 했고, 버마 민중들은 그를

통해 큰 용기와 투쟁의 의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문으로 망가진 고문피해자의 삶과 공동체의 존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한타와디 우윈틴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2008년 9월, 석방된 이후 우윈틴 선생은 감옥에서 입던 수의를 계속 입은 채로 살았습니다. “감옥에 있었을 때, 그 곳에 있는 정치범들과 너무나 부족한 음식이라도 조금씩 나눠먹었고, 똑같은 마음으로 함께 싸웠다. 나는 풀려났지만 그들은 그 곳에 있다. 나는 그들과 여전히 함께 있고,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단 한명의

정치범이 남아 있다면, 결코 수의를 벗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상징이 된 푸른 수의는 정치범에 대한 그의 깊은 연대요,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강한 열망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석방된 즉시 수 천 명의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고, 군사정권의 책임을 추궁했으며, 국민들을

향해 공개 사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고문과 오랜 감옥살이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NLD 활동을 지속하며 청년 세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지도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버마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우윈틴 선생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단호한

입장을 피력해왔습니다. 그의 원칙은 최근 정치 개혁을 표방한 테인 세인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대해서 협력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군부를 경계하며 타협만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서 더욱 또렷이 빛났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또는 흐름과 함께 헤엄쳐서 투쟁”해온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리고자 하는 것은 ‘한타와디 우윈틴 재단’(이하 우윈틴 재단)의 활동입니다.

80세로 풀려난 우윈틴 선생은 거주할 곳도, 입을 옷도, 모아둔 돈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는 오랜 친구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집 정원 작은 판잣집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무일푼이었지만, 친구들이 한푼 두푼 모아준 돈으로 고문피해자와 가족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2012년 3월 우윈틴 재단을 만들어 수많은 버마 정치범과

고문피해자들의 재활과 치유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지원했습니다.

출소 후 고립되어 있는 정치범을 찾아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빛으로 이끌었습니다. 부모를 감옥에 빼앗긴 자녀들에게는 자부심을 갖도록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위로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정치범의 가족들에게는 “당신의 부모(아들·딸)은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영예로운 사람”이라고 격려하며 위로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정치범들에게는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 문을 두드려 주었고 재정 및 의료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윈틴 선생이 다녀간 곳에는 고문피해자들이 힘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고문당한 사람을 더 이상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의지와 존엄을 손상시키는

고문은, 버마 정치범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겨운 연대 속에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중심에

우윈틴 선생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우윈틴 재단은 설립된 이래 338명의 정치범과 언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모두 1억 1,190만차트

(한국돈 1억2천만원 가량)를 지원했습니다. 출소한 정치범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직업경력을 조사하여 회사와 연결해주는 프로그램, 고문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병원과 연계해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우윈틴 재단이 있어서 수많은 고문피해자들이 마음의 위로와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정작 자신은 노환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소박한 삶의 태도로 더 많이 나누고자 했던 우윈틴 선생은 2014년 4월 21일, 그를 기리는 수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버마의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숙제를 남기고 영면했습니다.

온 생애를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삶의 귀감, ‘SAYA’가 됐습니다.

우윈틴 선생은 온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 버마의 젊은 세대에게 삶의 지표가

됐습니다. 극악한 군사독재에 저항해온 당당한 용기와 어둠 속에서 빛난 원칙, “독재정권 아래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싸웠을 뿐”이라는 겸손한 면모, 옷 한 점 남기지 않은 가난 속에서 지펴 올린 따뜻한 연대는 우윈틴 재단과 그 다음 세대들의 가슴에 살아남아 용기를 북돋아주고,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진실의힘은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통해 우윈틴 선생이 전 생애를 걸쳐 보여준 당당한 용기와 도덕적

목소리를 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폭력과 압제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준 그의 생애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윈틴 선생을 기리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다시는 과거 군사독재의 잔인한

폭력, 인간을 폭력 앞에 굴복시키고 공동체의 존엄과 의지를 해치려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더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윈틴 선생이 고문피해자를 돕고 지원하는 일을 해왔던 근원 역시 이러한 폭력과 인권침해가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간절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201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로 한걸음 나아가느냐, 다시 군부의 영향아래 머무느냐, 그 엄중한 갈림길에 선 버마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우윈틴 선생의 뜻과 올곧은 정신이 우윈틴 재단으로 이어져,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진전의 길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게, 우리의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진실의힘 인권상은 한국의 고문생존자들의 삶이 담긴 상입니다. 잔혹한 군사독재정권의 지하 고문실에서

수 십 일 동안 고문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낸 고문생존자들의 존엄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죽음 같은

고통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그 힘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고문생존자들의 간절한 뜻과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의힘 인권상을 통해 고문이나 폭력보다 강한 것은 바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이 버마 우윈틴 선생과 우윈틴 재단을 주목한 까닭도 우리의 경험에서 배운 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깜깜한 독재의 시간을 지나 민주의 시대로 건너왔습니다. 그 독재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국제 사회의 아주 작은 손길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우리의 삶이 조각나고, 가족과 사회공동체로부터 단절된 시간에 놓여 있을 때,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진실과 석방을 촉구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통의 동굴 속에 갇혀 있던 우리들에게 쏟아진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한 힘이 있는지를 삶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제 버마의 고문피해자, 생존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들 힘은 미약하지만, 우리들이 맞잡은 연대의 힘은 강력합니다.

우리는 또한 고문과 폭력에 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위대한 일대기가 그의 조국 버마를 넘어서, 정의와 평화, 평등을 향한 인류 공동체에게 큰 울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인류공통의 가치인 고문

없는 세상,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밑거름으로 될 것이라 여기며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재) 진실의힘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