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진실의 힘은 김영희 교수와 함께 온라인 강연 <국가폭력 피해자의 말에 감응하다>를 진행했습니다. 김영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과)는 구술 서사 수집과 분석을 전공하며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 피해자와 활동가의 말을 『밀양을 듣다』로 펴냈습니다. 강연에서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구술을 청취하는 방법에 대해 김영희 교수의 설명과 경험을 들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진실의 힘 후원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구술 청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공유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김영희 교수는 그것이 어떤 목소리는 지위와 조건을 이유로 공론장에서 지속해서 배제되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그런데 목소리의 배제는 곧 그 구성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립니다.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을 비롯한 국가폭력에서 피해자들이 ‘사회적 유령’이 돼 온 이유입니다.

구술 청취는 이러한 소외된 기억과 말을 불러내는 작업입니다. 수많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방식은 공식적이고 획일화된 기억 외에도 수많은 실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피해자 각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구술 청취는 차별과 폭력을 이겨내는 데 힘을 보탭니다.

김영희 교수는 구술 청취가 윤리적 목적을 바탕으로 하지만, 한편으로 폭력성을 내포한다고 강조합니다. 듣는 자는 편집의 권한을 손에 쥔 채 구술자의 일상에 침범하여,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잠재적 폭력성을 인지하고 구술 청취가 정당한 목적을 갖는지, 올바른 방법과 태도는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김영희 교수는 먼저 잘못된 구술 청취를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피해자에게 정확하고 구체적인 ‘증언으로서의 구술’을 요구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를 주제로 한 영화들의 법정 장면이나 과거의 ‘일본군 성노예’ 구술 자료집 등은 폭력의 사실을 정리하고 입증해내라는 사회의 요구를 잘 보여줍니다. 모든 구술 청취가 그 내용이 진짜인지 또는 가치 있는지를 가리는 데에 집중한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외면받기 쉽습니다. 대표할만한 기억 혹은 진짜 기억이 있다고 믿는 태도는 구술 청취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구술이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잘못된 전제입니다. 듣는 과정에서 청취자의 의도와 편향이 구술자가 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증언을 요구하는 태도는 자칫 구술자를 압박하여 오히려 말문을 닫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구술자의 말하는 의지와 목적을 지지해야 합니다. 구술자가 갖는 능동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영희 교수는 밀양 탈송전탑 운동 당사자들의 인터뷰, 성 소수자 인터뷰, 난민 여성 심포지엄에서의 경험들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에서 모든 당사자의 말과 행위에는 그 당사자와의 자리를 기획한 타인들의 의도를 넘어서는 구술자 고유의 동기와 목적이 있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구술자에게 기억을 말하는 것은 그의 의지를 반영한 정치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청취자의 의도에 앞서 구술자의 마음에 조력할 때, 비로소 온전한 구술 청취를 해낼 수 있습니다.

또, 듣는 자는 구술 청취자의 매개하는 권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성찰해야 합니다. 김영희 교수는 구술자를 대리할 수 있다는 허구적 감각을 경계하라고 당부합니다. 청취자의 영향력과 편집의 권한을 기록물에서 숨기고 마치 그 기억을 대리하는 마냥 굴 때 구술자의 능동성과 당시 구술의 맥락은 확인할 수 없게 됩니다.

구술 청취는 당사자뿐 아니라 한 사회의 치유를 위한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피해자 스스로 침묵을 깨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들의 기억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 안에서 구술 청취가 갖는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피해자와 넓은 의미의 당사자성을 공유할 때, 우리 사회는 과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강연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시민사회 단체에서 피해자를 만나고 때로는 구술 청취를 직접 진행하며 고뇌해 온 활동가들의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구술자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질 때 어떤 듣는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한 활동가가 묻자, 구술자에 대한 평가를 중지하고 청취자 자신이 가진 생각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술자의 선정이 또 다른 배제는 아닌지에 대한 우려에는,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기계적인 인터뷰 대신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그냥’ 들어보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는 김영희 교수의 경험 공유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자체가 필연적으로 내포한 폭력성에 대해 고민해 온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듣고자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물으며, 그 과정에서 찾아낸 청취자 자신의 목소리와 구술자들의 목소리를 겹쳐 담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돌아왔습니다.

폭력의 기억을 듣는 법은 간명한 답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소외된 기억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듣고자 하는 이유를 성찰하며 구술자의 마음과 함께하고자 노력할 때, 구술 청취의 의미가 빛을 발하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후기 작성│ 자원활동가 임은지

카드뉴스 제작│ 자원활동가 심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