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책 소개
1971년부터 1990년까지 격동의 한국사 한복판을 관통해온 옥중 기록.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대항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온 이들의 처절하고 위대한 분투기
한국 인권사에 남을 기록
‘감옥 속의 감옥’인 정치범 특별사동의 냉혹한 어둠 속에서 비전향 장기수로 수십 년을 갇혀 살았던 사람들, 혹은 사망자로, 혹은 생존자로, 그리고 혹은 여전히 비전향수로 남아 있는 그들, 일평생 온몸으로 분단의 고통을 겪어 왔음에도 남과 북에서 존재조차 잊히고 지워진 사람들, 그러나 결코 잊어선 안 될 사람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에서 되살려내 호명한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을 찾다가 독재정권에 의해 기약 없이 갇혔던 사람들이 야만적인 폭력 아래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고자 했는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분투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잔인한 국가 폭력이 횡행했던 시대의 기억들이 저자 특유의 담담하고 절제된 어조로 전개되는, 한국 인권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록이다.
1970년대 정치범 감옥의 세부를 그리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서울대 유학생 서승은 서빙고 대공분실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박정희의 3선 대통령 야망을 위해 당시 유력했던 야당 후보 김대중에게 용공의 혐의를 들씌우고자 기획ㆍ조작된 간첩단 사건의 올가미였고, 청년 서승의 19년 감옥살이의 고난의 시작이었다. 서승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분신을 시도하여 돌이킬 수 없는 전신 화상을 입는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로 19년간 갇혀 있었던 저자. 그는 이 책에서 70~80년대 정치범 특별사동의 세부와 비전향 장기수들의 옥중 삶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고통의 중심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절제된 감정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냉정한 관찰자의 기록에 가깝다. 영상물로 치자면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라 할 만하다. 0.75평 독방에서 맨몸으로 견디는 폭염과 혹한의 날들, 사상전향 공작에 저항하다 죽어간 사람들, 엄혹한 감시와 폭행이 상존하는 폐쇄 공간에서 싹튼 옥중 동지들 사이의 우정, 일반 재소자들과의 따뜻한 연민과 연대, 병든 동지를 간호하는 늙은 수인들의 이야기 등등…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그리고 온기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
1974년부터 사상전향 공작반이 설치되어 비전향수에 대한 폭력적인 전향공작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비전향수들이 잔혹한 고문 끝에 살해되거나 자살로써 항거했다. 식민지 민중을 탄압하는 데 쓰였던 일제의 치안유지법, 조선사상범 관찰령, 조선사상범 예방 구속령이 독재정권에 의해 각각 국가보안법, 반공법, 보안관찰법, 사회안전법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오래전 폐기했던 사상전향제도는 오히려 한국에서 독재정권이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데 사용되었다. “마치 강도의 칼을 빼앗아 자기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자학적 도착(倒錯)”이라 할 만하다.
저자의 동생 서준식은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투옥되어 17년간의 청춘을 감옥에 묻었다. 7년 형기를 다 마쳤음에도, 사회안전법 감호처분으로 기약 없이 갇힌 세월이 다시 10년이었다. 사상전향서를 쓰면 출소할 수 있었으나 쓰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1987년, 그는 사회안전법과 사상전향제도에 항의하여 옥중에서 51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이 책은 저자 서승 자신의 옥중기이자,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움직임을 감옥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주시해온, 그리고 지금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미즈노, 전 도쿄대 교수)이기도 하다. 기나긴 분단의 세월을 뛰어넘어 평화와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려는 사람들의 땀과 노고를 기억하며,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기록으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신역 개정판 『옥중 19년』
이 책은 1994년 일본의 이와나미 서점에서 일본어판으로 맨 처음 발행되었고, 1999년 역사비평사에서 김경자 씨의 번역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한국어판이 나온 지 근 20여 년 만에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발간하게 된 이번 개정판은,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고쳐 썼으며 초판에 빠졌던 표와 지도, 자료 등을 보강하고 오류와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원출판권자인 이와나미 서점은, 고문 및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진실의 힘’에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취지를 깊이 이해하여, 한국어판 출간에 따르는 로열티를 받지 않기로 함으로써 이번 개정판 발간에 의미를 더해주었다.
02 저자 소개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넓은 세상을 만나려고 미국, 유럽, 남미 등을 돌아다니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냉전과 국가 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운동을 설립하여 1992년까지 각 지역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일했으며 2018년부터는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1994년, 한국정치범감옥의 실태와 독재정권의 사상전향제도에 맞선 정치범들의 투쟁을 기록한 <옥중 19년>(일본어판, 이와나미 서점)을 펴냈으며 1999년에는 한국어판, 2002년에는 영어판, 2017년에 중국어판을 출간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활동하면서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타이완, 오키나와를 가다>(창비, 2011), <동아시아의 우흐가지 1,2-서승의 역사인문기행, 2016> (진인진)등의 저서를 펴냈다.
03 목차
머리말 5 초판 머리말 13
들어가며 23
1장 보안사 감옥 생활의 시작 27
납치 29 4월 어느 아침의 푸른 하늘 분신 35 국군수도통합병원 39
서울구치소 병사 2방 42 간수부장 49 공판 52 실미도 사건 54
빨간 세모판 57 정치범 64 인간의 작품 66 베트남전쟁의 악몽 70
7?4 남북공동성명 72 유신 감옥 74 상반된 통일의 염원 77
최후진술과 상고이유서 79 10사하의 정치범 84 눈 뜰 자유도 없이 86
2장 죄수의 나날 70년대 대구교도소 91
물살을 거스르는 잉어처럼 93 정치범 특별사동 95 통방?통모 97
군화발에 짓밟힌 아침 인사 101 거대한 ‘인간 창고’ 103 ‘참고 소식’ 106
감옥이 달라지면 밥도 달라진다 109 죄수의 나날 111 종이(紙)와 신(神) 115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117 감옥 안의 감옥 119 춘하추동 131
광풍, 천둥소리, 소나기 사형 집행 138 긴급조치령 140 단식투쟁 144
도서 검열 148 감옥의 제갈공명 149 옥 귀신 153
3장 사상전향제도와의 투쟁 159
사상전향인가 죽음인가 161 사상전향 심사 165 전향공작 대상자 166
간첩 171 종이 한 장 때문에 173 차별 지배의 구조 177
사상전향 공작의 시작 180 기아 작전 185 혈육의 정 187 백색테러 189
준식의 폭로 192 붉은 별 사건 196 독재자의 죽음, 70년대의 종말 203
4장 어머니 80년대 대구교도소 205
어머님 영전에 207 어머니 209 인혁당, 남민전 216 감옥의 봄 218
새로운 사상전향 공작 224 감옥에 생매장되어 228 아버지의 죽음 229
형제보다 좋은 우리 동지 233 김일성 장군 만세! 237
5장 재회 80년대 대전 중구금교도소 243
하얀 공룡 245 폐쇄독방 249 물고문 251 항의 자살 253
크리스마스 선물 255 오지산을 바라보며 256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 261 한 점 부끄러움 없이 264
민주화의 힘 269 통일에 대한 염원, 자유를 향한 꿈 278
그래도 계속되는 전향공작 282 재회 1990년 2월 28일 284
나가며 289
부록 293
서승 화보 294 일본어판 해설 304
초판 추천사 1 임헌영 311 초판 추천사 2 박원순 323 서승 연보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