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책 소개
“이 책은 열세 살이 되던 무렵부터 칠순에 이르기까지 줄곧 배를 타며 살아간 개야도 출신의 어부가 쓴 자기의 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책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한 청년이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부서진 삶을 거칠게 휜 손으로, 그 손 한구석에 남아 있던 온기로 다시 일으켜 나가는 삶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임유경(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게 좋다』 저자 임봉택 선생(76세)은 군산 앞 바다 개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배를 타며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여리고 작은 손바닥에 바닷일로 옹이가 박히고, 육지보다는 바다가 더 익숙해질 무렵, 그의 삶에 예상치 못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1972년 1월, 친구 박춘환, 유명록 선생과 함께 군산경찰서에 끌려간 것이다.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선생의 인생에서 1년여의 감옥살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죽어서나 잊지, 살아서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사연”들은 일상을 뒤흔들었다. 친했던 친지와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도 견디기 어려웠다.
수년 동안 정처 없이 떠돌던 임봉택 선생에게 삶의 거처가 돼준 것은 “글쓰기”였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그 이야기를, 임 선생은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던 밤, 배 안에 쭈그려 앉아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육지의 새벽, 조그만 방에 엎드려 한 장 한 장 글로 써 내려갔다. 고문으로 일그러진 손가락 사이로 연필을 들고, 사리와 조금 시간이 적힌 바다 달력의 뒷장을 공책 삼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쓰다가 분노가 솟고 눈물이 날 때면, “잠시 쉬어 가겠다”고 한숨을 돌리다가 또 썼다.
처음엔 한 장을 채우기도 어려웠지만, 써 내려갈수록 고통이 조금씩 옅어지는 걸 느꼈다. 서서히,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12명이 모여 살던 조그만 이엉 집에서 하나 뿐인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육지의 참외는 꿀맛인데 개야도 참외는 왜 맛이 없는지,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가족들은 슬퍼도 아이들은 왜 잔치 분위기였는지, 임 선생은 어릴 적의 유쾌하고 따뜻한 기억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함께 고기잡이 나간 선원이 북한 경비정이 쏜 총에 맞은 일, 나침반 하나 가지고 캄캄한 안개 속을 항해하던 선장과 뱃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의 글쓰기는 하루하루가 신비스럽기만 한 딸의 육아일기로, 삶의 가치와 기쁨을 일깨워 준 독서 일기로 이어지며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게 좋다”는, 삶에서 얻은 통찰을 들려준다. 텃밭에 크고 작은 꽃을 키우며, 보잘것 없이 버려졌던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임 선생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
“삶의 고통을 이겨낸 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고 또 하나의 이야기로 잉태된다. 여기 세상으로 알려져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한 평범한 국민에게 저질러진 국가폭력의 참상과 그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인간 정신의 고귀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당신의 이야기에 생명력과 사랑을 불어 넣을 것이다.”-문요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어둡고 험한 군사독재 시절 고문피해자요, 조작간첩 피해자에게는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자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임봉택 선생의 글은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게 좋다”는 삶의 경이로움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빼곡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고문으로 부서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인지, 또 그것은 삶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라는 질문에 대한 소박한 답을 제공한다. “쓰는 인간” 임봉택 선생은 우리는 왜 쓰는가, 쓰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작은 일깨움을 줄 것이다.
이 책에는 임봉택 선생이 직접 그린 그림 3점이 실려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3가지, 배와 왼손, 그리고 아내 편복희 씨를 그린 것이다. 임 선생과 오랜 만남을 이어온 유현미 작가의 그림 지도가 밑받침이 됐다. 선생의 그림은 거칠고 투박한 어부의 손으로 써 내려간 글과 함께 죽음보다 강한 인간의 삶을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펼쳐 놓는다.
표지 그림을 그린 유현미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작은 것들, 이를테면 벌레한테 갉아먹혀 잎맥만 남은 낙엽, 매미 날개 한 짝을 끌고 가는 개미, 퇴근길 전철에서 잠든 직장인, 텃밭 아욱잎에 사마귀가 벗어놓은 허물, 고라니 똥 들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들을 만난 순간의 애틋함과 설렘과 기쁨을 담아 온전한 존재로 그려낸다. 아흔 살 아버지와 함께 지은 그림책 <쑥갓 꽃을 그렸어>를 비롯, <마음은 파도친다>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들을 쓰고 그렸다.
02 저자 소개
1947년 군산 앞 바다 개야도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배를 타며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1972년 1월 친구 박춘환, 유명록 선생과 군산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2010년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재단법인 진실의 힘 설립에 참여했으며 현재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옥살이는 선생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결코 잊지 못할 고문의 고통, 그 기억들을 종이 위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달력 뒷면에, 버려진 공책에 글을 썼다. 처음에는 끔찍한 경험이 쏟아졌지만, 서서히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 하루하루가 신비스럽던 딸의 육아일기, 삶의 가치와 기쁨을 일깨운 독서 일기로 이어졌다.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죽음보다 강한 삶을 소복하고도 아름답게 펼쳐 놓는다.
03 목차
1장 섬에서 자란 아이
이엉 집의 기억 9 ┃ 개야도 참외는 왜 꿀맛이 아닐까? 12 ┃
상여와 돼지고기 14 ┃ 논두렁 쥐 양식 서리 17 ┃ 토끼와 개구리 21 ┃
“홍자 만났다!” 24 ┃ 아버지의 눈물 28 ┃ 남포동 거리의 네온사인 32 ┃
흑산도 아가씨들 38 ┃ 엎어진 배, 서조호에서 살아난 기억 42 ┃
첫사랑, 펜팔 46 ┃ 연평도 조기잡이 52 ┃ 총 맞은 신 부장 56 ┃
바람과 파도에 맡겨 놓은 내 목숨 59
2장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통
환장해 뛰다 죽을 일, 미쳐 죽을 일! 65 ┃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 70 ┃
간첩 아니라 간첩 할애비라도 고문을 당하면 74 ┃ “고무·찬양죄”를
받을 사람은 바로 형사들 78 ┃ 전주로 가서 서류를 꾸미다 83 ┃ 유치장의
악몽 86 ┃ 교도소의 법률 선생들 90 ┃ 불고지죄를 가르쳐 준 검사 94 ┃
요즘에는 무슨 고기가 많이 잡히냐? 99 ┃ 감방장 통통구의 에피소드 103 ┃
꽁꽁 묶인 이감 날, 택시비 106 ┃ 출소, 11개월 만에 상봉한 어머니 109 ┃
“봉택이는 이렇게 살아서 나왔는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었소!” 114
3장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게 좋다
기관장이 되어 121 ┃ 복희 씨와 첫 만남 126 ┃
“복희 씨 보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130 ┃ 우리 두리 육아일기 중에서 137 ┃
해태 어장의 실패와 완파된 우리 배 성덕호 142 ┃ 15년이 넘도록 둘이서
파도를 헤치며 145 ┃ 돌게 통발 10kg이 벌금 100만 원 149 ┃ 가난하지만,
나는 부자다! 153 ┃ 배움의 길 155 ┃ 재심과 고문수사관 대면 161 ┃
진실의 힘 167 ┃ 나의 꽃밭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