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석 (통역가)
40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진실의 힘’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을 찾았다. 한 혼자 힘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 ‘조작간첩’ 선생들의 끈질긴 싸움과 포기하지 않고 기록을 뒤져온 진실의 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나오려던 찰나, 신문 더미 사이에서 <경향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며칠 전부터 간절히 찾고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경향신문>, 내 무죄 판결 소식 기사가 있는 금요일자 신문 원본이었다. 신문 원본을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구하기 위해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20분을 걸어 배달소를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도서관에서 복사본을 얻었지만 허전했다. 원본을 꼭 갖고 싶었다. 신문의 질감, 활자의 잉크 냄새까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내 무죄 판결을 오래도록 박제할 소중한 기념패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었다.
“지난 주 금요일 자 신문, 혹시 남아있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허망했다.
“지난 신문은 이미 버렸는데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내 무죄 소식이 담긴 신문이 버려졌다고? 평생을 바쳐 증명한 내 진실은 결국 쓰레기였단 말인가?’
그 순간, 일그러진 내 표정을 바라보던 송소연 이사가 말했다.
“혹시 모르니 재활용 보관소로 가봅시다!”
우리는 곧장 건물 구석의 쓰레기 보관소로 달려갔다. 거대한 파지 더미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종이 사이를 헤집던 순간, 기적처럼 내 기사가 또렷하게 찍힌 신문을 발견했다!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보석처럼 찾아낸 나의 진실!
그 신문을 품에 안으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진실은 스스로 남아 있지 않는다. 어둠 속으로 밀려나고, 쓰레기 더미 속에 섞여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뻗는다면, 끝내 다시 빛을 본다.
내가 무죄를 받은 것도 시대가 저절로 변해서가 아니다. 불법구금과 고문조작이라는 진실을 찾아냈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일본 유학생이던 스물다섯 청년이 김포공항에서 영장도 없이 끌려가 ‘부자(父子) 간첩’으로 조작되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거짓을 벗겨내는 데는 40년이 걸렸다. 안기부 수사관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내 진술은 조서에 왜곡되어 기록되었고, 검사는 폭행으로 압박했으며, 판사는 훈계로 일관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간첩이라 지목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내 청춘은 찢긴 신문지처럼 구겨졌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그분의 누명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법정∙경찰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26년째, 지금까지 2천 건이 넘는 사건을 통역했다. 해마다 100건이 넘는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서 피의자와 경찰관, 변호사와 검사의 말을 오차 없이 옮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사건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타인의 사건을 옮겨야 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일은 내게 직업을 넘어 사명이다.
취조실의 좁은 책상 맞은편에 앉은 피의자를 볼 때마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억울함에 떨리는 입술, 후회의 숨소리. 그 언어 속에 혹시라도 내가 놓쳐서는 안 될 진실의 조각이 숨어 있지 않은지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단어 하나를 소홀히 선택하는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내가 겪었던 그 암흑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40년 동안 ‘쓰레기 더미’ 속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벼린다. 정작 내 머리는 스스로 깎지 못하는 처지라 해도, 타인의 억울함만큼은 쓰레기통으로 향하지 않게 하겠다는 결기. 그것이 내가 짊어진 십자가이며, 통역사로 존재하는 이유다.
이제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 올린 내 무죄소식 기사가 실린 그 신문을 통역 가방 속에 소중히 넣고 다시 통역 현장으로 향한다. 40년 만에 되찾은 나의 진실이 내게 말을 해주는 듯하다.
“보라, 진실은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찾아내어 빛 아래로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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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문영석 선생은 1985년 일본 교토대학 경제학부 재학생이었던 1985년 잠시 귀국했다가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부자 간첩’ 사건으로 조작되어 5년 9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장기 불법구금과 고문, 강요된 허위자백 속에서 청춘을 빼앗겼고, 부친 역시 13년을 복역하고 1998년 가석방됐습니다. “아들을 간첩으로 포섭한 비정한 아버지”로 조작된 부친은 억울함 속에서 2018년 세상을 뜨셨습니다.
문영석 선생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어 및 대우법을 문법적으로 연구하며, 언어의 사회적 역할과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일본인 학생에게 한국어를, 한국과 중국 유학생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쳤습니다.
현재는 법정과 경찰에서 사법 통역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건의 최전선에서 진실과 허위가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쉬는 날이면 전혀 다른 두 나라의 문화를 탐색하는 취미를 늘려갑니다. 올해 1월 22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부친에 대한 간첩죄도 하루 빨리 그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