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서 온 봄』을 읽고,
나는 1945년생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80세를 넘긴 시어머니가 먼저 송소연의 『먼 데서 온 봄』(진실의 힘, 2026)을 먼저 읽으셨다. 이 책의 주인공, 박동운 선생님과 같은 해에 태어나신 시어머니는 이틀만에 몰입하여 다 읽으신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은 날 밤, 시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상황들이 자꾸 떠오른다고. 어떤 상황이냐 여쭈니, 어머니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단다. 전쟁 전후로 아버지를 항상 숨겨야 했던 일, 동네 젊은 청년들이 어딘가 끌려갔다 온 뒤 바보가 되어 동네를 돌아다녔던 모습들, 그리고 살던 지역 가까운 어느 산골짜기에 “오빠골” 이란 곳이 있고, 거기서 많은 오빠들이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는 말들이 떠올랐다 하셨다. 어쩌면 그 시절은 공포와 두려움의 긴장이 일상이었고 누군가는 끌려가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발하고,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마저 모호한 그런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 책 서문에서 저자는 "전쟁과 분단, 독재의 폭력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그 시대를 건너온 고 이수례 선생과 이름 없는 수많은 '이수례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어쩌면 우리 시어머니가 잠못 이루신 그 이유, 이 책은 그런 시대에 대한 진혼곡이 아닐까 생각했다.
1970년대~80년대,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거나 대중의 사고를 꽁꽁 묶어 통제하기 위한 마술봉이 있었다. 그게 “간첩조작사건”이었다. 이 마술봉이 휘둘러지면 어느 날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고 찍히면 조사라는 명분 속에 고문과 협박이 이어졌다.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길 수 있었다. 말이 되는 일이냐고 묻겠지만 당시는 말이 되었다.
당시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시를 풍자하는 우스개 말이 있었다. 각 나라의 정보기관인 소련의 KGB, 미국의 CIA, 한국의 안기부가 내기를 했다. 간첩을 잡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것이다. 소련이 하루였고, 미국은 반나절, 한국은? 곰을 잡아와 고문을 해서 바로 자백하게 했다는 웃기지만 서글픈 이야기다.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리게 했지만 간첩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시절 감옥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벅찬, 참혹한 감옥에서도 사람의 생각은 멈추지 않고 감옥 바깥 사람들에게 전달이 된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은 “국가폭력에 맞서 삶을 지킨 박동운”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을 것 같은 박동운의 감옥 속에도 비집고 들어가는 희망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평범한 농협직원인 박동운이 아닌 세상에 맞서는 박동운이 되어 갔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43년간의 시간이 개인의 역사이기 이전에 우리의 현대사라 할 수 있다. 현대사가 박동운이라는 사람의 몸을 통과해간 거라 보는 게 맞겠다. 진실을 찾아가는 19번의 재판과정은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허점과 부실을 확인하는 거로도 보였다. (Sonny와 Sunny 부분을 꼭 보시기 바란다!)
박동운은 19번의 재판 끝에 진실을 밝혔고, ‘간첩’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보드랍고 말갛던 아이들의 온기, 그리고 다른 삶이 가능했을 시간들이다. 고문에 못 이겨 한 허위자백에 대한 뼈아픈 상처와 아비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시간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비통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했을 것이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답하곤 했을 것이다.
억울함과 비탄에 쓰러지지 않았던 그는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이사장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진실을 찾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데 희망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박동운이 감각했던 희망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희망을 감각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캄캄한 길 위에 서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