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또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조립식 컨테이너 벽에 깔려 숨진 故 이선호 군의 희생 앞에서, 2년 전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김도현씨는 제 9회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한 산재피해 유가족모임 ‘다시는’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동생을 잃었습니다.

4월 22일 오후 4시쯤, 경기도 평택항에서 일하던 23살 이선호씨의 삶이 멈췄습니다.

동식물 검역 일을 하던 이선호씨는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뒷정리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10여분 만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300kg가량의 철판이 그를 덮친 것입니다.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고, 그를 보호해줄 안전모 하나 없었습니다. 수신호나 무전으로 상황을 알려주는 안전 관리자도 없었고, 감독관도 없었습니다. 사측 관계자는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윗선에 보고하느라 바빠서 응급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수원 건설 현장에서 제 동생 태규를 잃은 저로서는 故 이선호 씨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2년 전 태규의 죽음과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제 동생 태규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건축 폐기물을 5층에서 1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던 태규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추락사를 당했습니다. 사람의 탑승이 금지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했던 것도 위험한데, 문까지 전면 개방되어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20m 높이에서 일하는데, 안전화, 안전모, 안전벨트 등 안전장비를 일체 지급 받지 못했습니다. 안전교육도 없었고, 추락 방지 시설도 없었습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술 먹고 실족사한 것이라며 태규의 부주의로 몰아갔습니다. 저희 가족은 슬퍼할 시간도 없이 사측이 은폐한 증거를 찾아 밤낮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 결과, 태규가 떠난지 2년여 만에 하청업체 대표의 사과를 받았습니다. 원청업체는 아직까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연합뉴스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어루만지고 있다./ 다시는

반쪽짜리 중대재해처벌법

이선호와 김태규라는 이름만 다를 뿐, 우리 아이들이 일하는 현장의 안전불감증은 너무도 똑같습니다. 매년 2400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다치는 사람은 10만 명이 넘습니다. 그 곁에서 고통받는 가족들을 포함하면 숫자로는 셀 수조차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야, 얼마나 많은 산재 환자들이 발생해야 일하는 현장이 달라질까요?

지난 겨울,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저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한 단식 농성을 했습니다. 일하는 우리 아이를, 노동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기업에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긴 싸움 끝에 ‘기업’이 빠진 반쪽짜리 중대재해처벌 법률안이 만들어졌습니다. 벌금 하한선이 삭제되고,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제외되고, 일터 괴롭힘도 빠졌습니다. 50인 미만의 사업장인 김태규와 이선호는 이 법을 적용받지 못합니다. 제2의 김태규와 이선호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이렇게 노동자의 생명보다 기업을 보호하고 나서니, 제 동생이 일하던 원청업체는 아직까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존재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월 28일, 산재 유가족 모임인 ‘다시는’이 구의역 승강장 9-4에 모였습니다. 5년 전, 2인 1조 안전 수칙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김군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생일날 컵라면도 못 먹고 떠난 김군을 위해 올해도 생일 케익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엔 김군을 기억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구절이 제 심장에 와서 박혔습니다. 24살, 고 이선호 군과 동갑이라는 청년이 쓴 글은 “존재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