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서 비로소 가슴속 이야기를 꺼냈어요"
2010년 10월 3일부터 11월 22일까지 8회에 걸쳐 5기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2기에 이어 5기에도 참여하신 김태룡 선생님과 처음 참가하신 김장호 선생님이 풀어놓은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김장호
차라리 강도 살인 같은 거면 몰라도 간첩만은, 빨갱이는 안 된다고 식구들이 외면했어요. 마누라가. 그 응어리는 그대로 있어요. 심정을 말하라고 하는데 그 억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나타낼 수가 없어요. 마음이 묶여 있는 거예요. 누구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1회)
나한테 가장 큰 후유증은 인생의 맥이 끊긴 거예요. 인생의 황금기 때 딱 코가 걸려서.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일 뿐. (…) 매 맞는 거보다 빨갱이 자식으로 못 키운다고 딸의 호적을 파 버린 것이 가슴 아파요. 그래서 호적이 두 개야. 마누라 쪽에서 따로 호적을 만들어서. 딸을 두 번 만났는데 대학 3학년 때. 다 커서 만나니까 서먹서먹해서 아무 것도 안 돼요. 현재 3년 동안 서로 연락도 안 해. 이야기 나눌 공통 주제도 없고. 애기 때 만났어야 정이 들고 뭐가 있지. (…) 솔직히 말하면 뭔가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 좀더 구체적으로 좀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내용들이 나와야 해요. 우리 빨가벗읍시다! (2회)
제가 울보예요. 쫌 창피하죠, 남자가. TV 보다가도 울고. 나를 도와줬던 유일한 일본 분, 친형제보다 더 잘해준, 그 은혜를 못 갚으니... 일본에 가려고 여권도 만들었는데 우리돈 백만원이 일본돈 십만엔 밖에 안 되고 뭐 그래서 못 가고. (…) 자꾸 나를 가두면 안 되고 자꾸 꺼내야 치유된다고 생각해요. 치유 의지도 중요하고. 나는 생각해요 내가 뭘 가둬 놓고 있는지. 나 배고픈데 밥 좀 사도! 이거랑 똑같은 거예요. (3회)
나보다 다른 사람들(김태룡 선생 같은) 겪은 거 들으면 눈물 나요. (…) 같이 고생한 사람들 만나면요, 발가벗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형제보다 더. 김태룡 선생이 잊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잊을 수 없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김태룡 선생님 같았으면 나는 못 견뎌요. 미쳐버리고 말죠. 죽었을 거야.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고통. 약해서 나는 못 버텨요, 정말. (이곳에 와서) 여러 번 하다 보니 마음은 편합니다. 처음엔 조마조마하던 것이. 마음이 개운해요, 만나면 반갑고. (…) 내가 낯을 많이 가려요. 여자들은 더. 근데 이분들은 그런 게 없어져요. 그냥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세상 천지 어디에다 제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여기 아니면. (5회)
김태룡
지금도 밤에 잡혀가는 꿈 꿔요. 고문 없는 세상이 나의 소원. 천국은 말고, 여기 이 세상에서 고문이 없어졌으면. (…) 고문 생각만 하면 자존심 상하고 슬프고 괴롭고 좌절감도 오고 우울증 생깁니다. 나는 지금도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고, 비참하고... 비참한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심정이에요. 그리고 지금도 고문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없애야 하지 않겠나, 나는 오늘의 이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나는 아픈 만큼 병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가 아니라. 또 누군가 저놈, 저항하는 놈, 하며 나를 잡아다가 고문할 것 같은 압박감이 지금도 있어요. (3회)
일 있으면 좋죠.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일은 참 좋은 거고 행복한 건데, 인생이 뒤틀리는 바람에 뭐가 뭔지 헤매고 있는 거 같아요. 감옥 갔다 오니 내가 살던 서울이라는 곳이 바늘 끝 만치도 안 남아 있어요. 답십리 또 어디어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집 있던 자리에 큰 도로가 나 있고. 대한민국 이 땅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지도가 없어요. 동경 바닥에 나 혼자 똑 떨어진 느낌이에요. 구심점이 없어지고 허공에 떨어져 있는 느낌, 그야말로 나홀로 무능력자가 다 된 것 같아요. 분하다 할까, 원통하다 할까...
내가 47년 생인데 어려서 그 가난하고 먹을 게 없었어도 분노는 없었는데, 지금은 먹기는 잘 먹는데 고문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잘 살지 못한 생각 때문에, 내 능력 발휘도 제대로 못하고, 이것이 분노로 치미니까, 참 비참해요. 여기 다시 오는 이유는 내가 나를 이렇게 분노와 억울함에 찌들린 나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죠.)
지금은 고문 안 당하니까 고문당했을 때보다는 낫죠. 지금 다시 고문당해야 한다면 가난한 나라, 배고픈 불행을 선택하겠다, 할 수 있다면요. 다리를 하나 잘라내고 목이 잘려도 고문은, 감옥은, 노. 고문을 당할 때는 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 해도 고문보다는 나으리. 차라리 죽는 건 죽을 수 있는데, 고문이라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에요.
불교 용어에 8고라는 말이 있어요. 생(生), 노(老), 병(病), 사(死), 그리고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 그런 것인데 그 말이 만들어질 때는 ‘고문’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겪은 이런 고문은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고문할 수는 없지요. 어찌 이런 인간들이 가능한가. 너무나 지독하고 힘들었고 아팠어요. 죽음을 능가하는 고통이었어요. 그러니 8고 속에 당연히 고문에 의한 고통이 들어가야 해요. (4회)
지난 모임(2기)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내 얘기 하면서 같은 기 다른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진도여행 다녀온 것이 그렇게도 눈물겨운, 좋은 추억으로 남고, 지금 생각해 봐도. 내 평생에 그 여행이. 가슴에 깊이 남아 있고. 마음이 다 하나가 되어서. 그 때만큼은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2기 때) 못 다한 말이 남은 거 같아서 5기에 또 이렇게 왔어요.
병이 되다시피 했어요. 감옥살이를 가슴 속에 숨기고 산 것. 밖에다 얘기 못 하고, 할 수도 없고. 했다가는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고. 가슴에 품고 있어서 병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 이 자리, 같이 감옥에서 사신 분들 있는 이 자리 아니면 죽었다 깨나도 이 얘기 못하지요. 속이 좀 가벼워지려나 싶은 기대가 있고. 나는 일생을 살면서 여기 와서 비로소 가슴속 이야기를 꺼냈어요.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괴롭고 슬프고 원통하고... 그런데 서로들 다 얘기 나누다 보니 그 사람 고통이 내 고통이고, 우정이랄까... 이 시간은 내가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는 시간이지요. (5회)
*진실의힘 소식지 준비2호(2010.11.5. 발행)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