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우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 내부의 급진화

카스 무데(Cas Mudde)는 극우를 크게 ‘극단 우파’와 ‘급진 우파’로 구분한다. 극단 우파는 국민주권과 다수결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이며, 파시즘이 대표적이다. 반면 급진 우파는 민주주의의 형식은 인정하지만 소수자의 권리와 다원주의를 부정한다. 무데는 급진 우파의 핵심 요소로 토착주의, 권위주의, 포퓰리즘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극우를 민주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세력으로 이해했지만, 최근에는 민주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급진화된 현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극우는 왜 주변부에 머물었으며, 어떻게 주류 보수정치와 결합했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백인 남성 노동계급의 박탈감만으로 극우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첫째, 백인 남성 노동계급이 과거부터 반드시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둘째, 세계화와 탈산업화의 피해가 백인 노동계급에게만 집중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유색인 노동계급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는 연구도 있다. 셋째, 경제적 박탈감과 불만은 반드시 우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경화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왜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극우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전통적인 좌파가 증가하는 대중의 불만을 포착하고 조직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즉 극우의 성장에는 대중의 박탈감뿐만 아니라 그 불만을 정치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던 극우 세력과, 반대로 그 불만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전통적 좌파의 무능 혹은 쇠퇴가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 냉전기 극우 ― 존 버치 협회

미국 냉전기 극우를 대표하는 조직은 1958년 로버트 웰치가 창립한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였다. 이들은 강력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미국 사회와 정부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침투·조종되고 있다는 음모론을 확산시켰다. 민권운동을 공산주의 세력의 조종으로 규정하고,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미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판했으며, 수돗물 불소화까지 국민을 세뇌하기 위한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극단주의적 음모론 집단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존 버치 협회는 단순한 주변부 집단은 아니었다. 회원 상당수가 대학 졸업자인 중산층이었으며, 배우 존 웨인 등 대중적 인물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미국 정치에 적극 개입하며 보수주의의 정치적 지형에 영향을 미쳤다. 1959년에는 아이젠하워와 흐루쇼프의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배리 골드워터, 프레드 코크, 윌리엄 F. 버클리 등 보수주의 인사들과 연결되었다.

1961년에는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는 위헌이라는 진보적 판결(1954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내렸던 얼 워런 연방대법원장의 탄핵운동을 전개했고, ‘Impeach Earl Warren’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강경 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를 적극 지지해 그의 후보 선출에 기여했다. 골드워터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존 버치 협회는 결국 주류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자유주의 진영뿐 아니라 윌리엄 F. 버클리, 러셀 커크, 골드워터 등 보수주의 내부에서도 그들의 음모론과 극단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레이건 역시 1966년 자신이 존 버치 협회 회원이라는 소문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닉슨 행정부 역시 협회를 감시하는 등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조직의 쇠퇴가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니었다. 존 버치 협회가 확산시킨 강력한 반공주의와 보수적 정치담론은 이후 필리스 슐래플리의 이글 포럼, 제리 폴웰의 모럴 머조리티, 크리스천 코얼리션 등 뉴라이트 세력으로 계승되었다. 존 버치 협회의 역사적 의미는 미국 보수주의의 정치적 담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고 이후 극우·뉴라이트 정치가 성장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3. 극우의 주류화 3단계

존 버치 협회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가 완전히 분리된 정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둘의 경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흐릿하고 ‘다공적(porous)’이었다. 따라서 극우의 ‘주류화’를 단순히 극우 세력이 보수정당 안으로 진입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기보다,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 사이의 경계가 새롭게 재조직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이러한 주류화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레이건 시대이다. 레이건은 선거 과정에서 ‘주의 권리(states’ rights)’와 강한 반공주의, 기독교적 가족가치 등을 강조하며 사회적 보수주의자들과 공명하는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레이건 시대의 정치적 기반은 흔히 **‘세 발 달린 의자’**로 설명된다. 강경한 반공주의, 감세와 규제완화로 대표되는 경제적 보수주의, 낙태 반대와 가족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적 보수주의가 그것이다.

레이건은 선거를 위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표와 열정을 필요로 했고, 이들은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화할 기회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극우의 후계 세력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의 경계가 흐려졌다. 그러나 레이건이 극우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낙태 반대 세력이 강력히 반대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를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하고 마틴 루터 킹목사 생일을 연방공휴일로 정하는 등 전통적 보수 정치의 경계를 유지했다.

두 번째 단계는 1990년대 민병대 운동이다. 냉전 종식 이후 극우의 중심이었던 반공주의는 정부에 대한 불신, 반연방주의, 음모론과 무장 저항을 결합한 형태로 변화했다. 민병대는 자신들을 단순한 극단주의 집단이 아니라 ‘미국 혁명의 과업을 계승한 사람들’, ‘공화국과 헌법의 수호자’로 묘사했다. 미국의 역사와 헌법을 선택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반정부주의와 무장 저항을 정당한 정치행동처럼 보이게 했고, 운동 내부의 배제적·음모론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가려졌다. 이를 통해 극우는 ‘이상하고 위험한 집단’에서 벗어나 미국의 역사와 헌법을 계승하는 정상적인 정치세력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는 공화당 자체의 우경화이다. 해커와 피어슨이 말하는 ‘보수주의의 딜레마’에 따르면, 뉴딜 이후 공화당은 기업과 고소득층의 이해를 대변했지만 이들만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화당이 활용한 것이 **‘레드 미트 정치(red meat politics)’**였다. 경제적으로는 기업과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대중에게는 낙태, 이민, 총기, 종교, 가족가치 등 감정적이고 논쟁적인 쟁점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 전략은 선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화당이 통제하기 어려운 정치세력을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토머스 팰리가 이를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표현한 이유다. 공화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 극우와 사회보수 세력에 정치적 공간을 제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오히려 공화당 자체를 변화시키게 되었다.

이 과정은 티파티 운동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티파티는 강력한 반정부·반조세를 주장하며 기존 공화당 정치인들을 ‘이름뿐인 공화당원(RINO)’이라고 공격했다.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의 비서실장은 자신들이 먹이를 주어 키운 괴물이 결국 자신들을 잡아먹었다는 취지로 이를 표현했다.

결국 극우의 주류화는 극우가 주류정당에 단순히 진입한 과정이 아니다. 주류 보수정당이 선거를 위해 극우적 의제와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 정치적 경계 자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4. 트럼프의 등장 ― 극우 주류화의 결과

트럼프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이러한 장기적인 과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오바마의 출생지를 문제 삼은 ‘버서리즘(birtherism)’, 반이민주의, 반무슬림 정서 등은 과거라면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주장을 앞세워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주의에는 반이민주의, 경제적 민족주의, 강한 지도자에 대한 선호, 반정부 정서 등이 결합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어떤 평론가는 트럼프주의가 유럽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주의가 미국 정치문화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토착주의·권위주의·포퓰리즘이 새로운 형태로 결합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주의를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성향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냉전기의 반공주의, 뉴라이트의 성장, 레이건 시대의 보수주의, 1990년대 민병대 운동, 공화당의 우경화와 같은 수십 년의 정치적 과정이 트럼프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결국 극우의 주류화란 극우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주류정치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극우 스스로가 정당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주류 보수정당이 선거를 위해 극우적 언어와 의제를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경계 자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질의응답>

Q1. 미국 극우의 주류화 과정이 한국에도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A. 미국과 한국의 역사적 조건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시사점 가운데 하나는 보수주의 정치인들의 역할이다. 존 버치 협회가 주변부에 머무를 수 있었던 데에는 진보 진영의 비판뿐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 극우를 비판하고 경계했던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윌리엄 F. 버클리, 배리 골드워터, 러셀 커크 등이 존 버치 협회의 음모론과 극단주의를 비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극우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이나 학계의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보수주의 내부에서 극우와 분명한 선을 긋는 정치적 역할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년 세대의 박탈감이다. 청년들이 박탈감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극우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불만이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정치로 연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들의 불만을 어떤 정치세력이 포착하고 조직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늘날의 현상은 ‘극우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극우가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예외적인 세력이었지만, 역사와 헌법을 전유하고 제도권 정치와 결합하면서 점차 ‘정상적인’ 정치세력처럼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Q2. 미국 민주당은 극우의 성장을 막는 데 어떤 역할을 했나요?

A. 민주당은 존 버치 협회 등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통해 극우 세력이 쇠퇴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정책 역시 극우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클린턴 시대의 경제정책은 레이건 시대와 상당한 연속성을 보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백인 노동자들이 충분히 좌경화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음에도 민주당이 이들의 불만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행정부 역시 금융기관을 구제했지만 주택을 잃은 서민들의 박탈감과 분노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 따라서 극우의 성장에는 공화당의 우경화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정치가 대중의 경제적 불만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Q3. 한국 극우와 미국 극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한국과 미국의 극우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특히 냉전기 미국 극우에서는 반공주의가 핵심적인 정치 언어였다. 존 버치 협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 극우에서는 반공주의의 비중이 줄어들고 총기, 낙태, 이민, 여성, 종교와 가족가치 등 다양한 의제가 중심으로 등장했다.

한국 극우는 아직까지 반공주의가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극우와 구별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차 반이민·반외국인 노동자 정서, 반페미니즘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반공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Q4. 백인 남성 노동계급은 왜 특별히 극우화되었나요?

A. 미국의 전통적인 백인 노동계급은 자신을 단순한 피지배계급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사고 재산을 축적하며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자유로운 노동자’의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백인·기독교인·이성애자·남성이라는 사회적 위치와 노동계급이라는 위치가 결합하면서 자신들이 미국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고 인식했다. 이후 세계화, 이민자, 유색인종, 자유주의자, 신자유주의 등으로 인해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이러한 박탈감이 극우 정치와 결합할 수 있었다.

Q5. 트럼프가 북한이나 김정은을 대하는 태도는 전통적인 극우의 반공주의와 모순되지 않나요?

A. 냉전기 미국 극우에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공포가 중요한 정치적 동력이었다. 북한 역시 이러한 공산주의 위협의 일부로 인식되었고, 민병대 운동에서 북한군이 미국에 침투한다는 등의 음모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이러한 전통적인 반공주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트럼프주의의 또 다른 특징인 스트롱맨(strongman) 정치와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푸틴이나 김정은처럼 강한 지도자로 인식되는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태도 역시 이러한 강한 지도자에 대한 선호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Q6. 극우의 주류화 과정에서 계층별 차이도 존재하지 않나요?

A.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 사이의 경계는 하나의 고정된 선이 아니라 매우 다공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들이 순차적으로 이동했다.

초기에는 지식인들이 주류 보수주의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윌리엄 F. 버클리나 러셀 커크와 같은 보수주의 이론가들이 자신들을 ‘존중할 만한 보수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다른 극단주의 세력과 경계를 만들었다.

이후 민병대와 같은 극우 세력이나 백인 노동계급이 정치적 공간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극우 내부에서도 지식인, 정치활동가, 노동계급 등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이 주류화되는 과정 역시 동일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리스펙티빌리티(respectability), 즉 존중 가능성’이다. 극우와 보수주의 내부의 여러 집단들은 자신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정상적인 보수주의자’임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다른 집단과 경계를 만들었고, 이러한 경계의 재편이 반복되면서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의 관계 역시 변화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