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칠성 (사업가)
다시 이 땅을 밟으며 한 생각,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고 그렇게 살면서 지은 탄식과 후회는 않겠다고.
오늘 주절거리고, 취한 행동들이 과거 내가 뱉은 말을 질투하고 배반하거나 씹어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인천공항의 싸늘한 기운을 맡으며 되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별반 특별할 것 없는 몇 년을 살면서 지나왔다. 최소한 계엄이 있기 전까지는….
60줄을 바라보며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는구나' 했다.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인간이 대통령이 되고 퇴보하는 시대를 겪으며 가끔씩 촛불집회에 나가도 무기력한 마음만 더해갔다. 망동의 극치 계엄을 보며 역설적이게도 살아 있음을 증명할 기회가 왔다. 눈물을 훔치며 응원봉을 만나고, 야만에 중독된 대중이 드디어 떨쳐일어난 광경을 보며 민주주의가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 있음이 희열로 다가왔다.
그렇게 역사의 변곡점마다 부활하는 민주주의를 보며 야만의 찌꺼기, 야만이 남긴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줄 알았다. 이 희망적인 착각이 그리 빠른 시간에 깨질 줄 모르고….
거악의 마리오네트만 잠시 잡아두었을 뿐 역습해오는 악의 본령이 우리가 지긋지긋한 늪에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좋은 것은 언제나 상대가 있음이다.
나쁜 것과 결별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랴.
욕망과 탐욕의 차이, 소유와 독점의 차이같이 이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큰 간극 속에서 우리는 산다.
내란 재판을 보며 왜곡된 법의 미학을 느낀다.
그 판사는 내란이 5년 이상의 징역형이라면 5년을 선고했을 거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최대한의 선처를 할까?
내란범에게 최저 형량이 무기징역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판결문에 그 애틋한 선처의 뜻을 담았다.
실패한 내란이 양형의 사유라고? 실패한 이유가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하고 과도하지 않은 계엄 진행 때문이라니.
위험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장갑차와 계엄군을 막은 시민의 힘은 무엇이었나.
갓난아이를 업고 나온 어머니, 절뚝거리며 아픈 몸을 이끌고 엄동설한에 광화문을 지킨 할아버지,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철야하며 파면을 촉구했던 이들까지 온 국민의 엄벌 청원은 어디 갔는가!
교묘하다. 판사가 악의적 판단을 법의 미학으로 치장했을 뿐.
내란 당일, 아내와 아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여의도로 달려간 내게 어제의 재판은 모욕이다.
거악에 항거한 우리의 역사처럼 위대한 이 혁명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그 옛날 횃불과 죽창이 응원봉과 신세대 아이돌의 노래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안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우리의 싸움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과거를 망각한 내 어머니에게도, 현재를 버티고 있는 나에게도, 아직 말귀를 겨우 알아듣는 두 살 된 내 손자에게도 "민주주의"는 밥과 공기 같은 것이다.
여기는 아직도 야만의 땅이다.
사는 것 같은 삶이 소중한 오늘이다.